레종(raison) - 흡연은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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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꼬부기 작성일 10-05-24 16:24 조회 1,87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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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야기
레종(raison) - 흡연은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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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언제부터 고양이를 길들였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고고학적 증거가 없으므로 추정할 뿐 입니다. 다만 유물로는 1980년대 키프로스 섬의 석기시대 유적에서 고양이 턱뼈가 발굴되었는데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6천 여년 경으로 밝혀졌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섬은 들고양이가 서식지가 아니므로 인간의 손으로 옮겨왔을 것이라고 할 때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길러진 시기를 최소 6천 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가장 사랑했던 민족은 이집트였습니다.

1888년 이집트 나일 강 서쪽 연안에 있는 베니하산(Beni Hasan)이란 마을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고양이 묘지를 발견했는데 무려 10만 여 마리가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두 비료로 팔려나가고 단 한마리만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었는데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교하게 천으로 몸통을 감싼 다음 머리 부분에 기름종이 마스크를 씌웠습니다. 그리고 내세에 먹이가 되어 줄 쥐 미라들과 함께 고양이 모양의 나무관에 넣어서 장례 지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식량을 축내는 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쥐잡는 능력이 탁월한 고양이는 신격화되었습니다. 기원전 935년에 퇴위한 최초의 리비아 출신 파라오인 22왕조 쇼솅크(Shoshenq) 1세(성경에서는 애굽의 시삭shishak왕으로 나오며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궁을 파괴한 인물)는 부바스티스를 수도로 삼고 한낱 지방신에 불과했던 바스트를 왕국의 공식 숭배신으로 선포했습니다. 바스트 bast(bastet)또는 유바스티(ubasti)라고 불리는 고양이 여신은 아홉개의 목숨을 가졌다고 하는 암사자 하토르와 융합되어 다산과 전쟁의 신으로 섬겨졌습니다.

기원전 60년 경 이집트를 여행했던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스 시칼로스는 “이집트에서 고양이를 죽이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사형에 처해졌다”라고 하면서 “실수로 고양이를 죽인 로마 병사를 이집트 왕인 프롤레마이오스도 살릴 수 없었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절대적으로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어둠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둠이란 죽음을 상징했고 어둠 자체가 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해가 진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했으며 고양이의 이러한 특성을 바스트와 연관지어 오직 고양이만이 세계가 어둠 속으로 영원히 몰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언제부터 고양이를 키웠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잿더미가 된 폼베이에서도 고양이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스트 신앙은 유럽을 휩쓸었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톨릭을 정식 국교로 선포하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다른 동물들과 달리 야성의 습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특유의 배타적인 독립심은 오히려 고양이만의 매력으로 칭송받아 애완동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세시대 마녀 사냥이 시작되면서 고양이는 엄청난 수난을 당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고양이는 풍요와 모성이라는 긍정적인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 여신(Mother Goddess)'의 평등주의적 원시 신앙과 연결되었는데 가톨릭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관념에서 배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소리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행동이나 교미기의 울음소리 등은 마녀의 습성과 동일시되어 닥치는 대로 처단을 당했습니다. 이 시기에 고양이를 키우는 늙은 여인은 모두 마녀로 몰려서 함께 죽었습니다. 모든 이교도를 물리치고자 했던 중세의 카톨릭 신앙이 고양이를 혐오하는 갖가지 미신과 속설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데 그중의 하나가 죽음(어둠)의 신이 보낸 전령이라는 이미지입니다.

고양이를 문장(紋章)으로 한 ‘레종’이라는 담배가 있습니다. '레종(raison)'은 영어의 '리슨(reason)'이며 우리말로는 '이성(理性)'으로 뜻풀이를 합니다. 어떤 주장이나 근거를 뒷받침하는 논리적인 개념인 '이유'도 되지만 존재론적인 의미인 이성이라고 해야 담배와 어울립니다. 흡연은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이기 때문이죠. 또한 계산, 비례를 뜻하는 라틴어 '라치오(ratio)'의 번역이며 일관성 있는 논리적인 담론(discourse) 또는 그 담론에 담긴 진리라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것을 인식하고 설명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담론을 전개합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삶에 관한 논의가 주종을 이룹니다. 삶이란 소멸에서 탄생하므로 결국 삶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들레르에게 고양이는 결혼의 기쁨과 동시에 공포의 세계를 말하고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詩)에서 고양이를 봄날과 연정의 관능으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고양이는 중세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아직도 죽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담배 이름 ‘레종’과 고양이의 도안은 이성이라는 존재의 고유한 속성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기호입니다. 거칠게 풀이하자면 이성이란 죽음(또는 삶)을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상징이 바로 ‘레종(raison)’ 담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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