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이야기 -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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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꼬부기 작성일 10-05-24 16:35 조회 2,06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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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야기 - ‘88’

 

661861487_759b0886_11.jpg우리나라가 88올림픽을 앞두고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발매한 담배 이름입니다.


88올림픽 개최는 박정희 때 처음 논의되었지만 10.26이후 중단되고 최규하 내각은 올림픽 유치를 철회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국면 전환용으로 IOC에 올림픽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당시 올림픽 유치 작전의 책임자는 안기부장 유학성이었습니다.


올림픽은 시기상조라는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권을 위임 받은 유학성은 정주영을 민간 추진 위원장으로 내정하고 사활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IOC위원을 비롯한 올림픽 관계자들은 일본 나고야에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돈 오버도퍼가 쓴 「두개의 한국」에는 “정주영은 투표일을 앞두고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던 IOC위원들에게 항공권과 현금은 물론 향응을 제공하는데 수백만 달러를 썼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로비전 외에도 나고야 반대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안기부장 유학성의 비망록에는 “제 84차 IOC총회가 열리는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전세기로 실어 나른 재일동포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누비면서 올림픽의 나고야 유치를 맹렬히 반대하고 다녔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IOC위원이었던 김택수는 “서울시는 세표밖에 안나온다. 한 표는 내 것이고 또 다른 표는 미국과 대만”이라고 했지만 투표일인 1981년 9월 30일에는 52대 27란 압도적인 표차로 결정되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거대 스포츠 자본인 아디다스가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자국의 스포츠 자본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디다스에게는 불리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장을 가진 우리나라를 택했던 것입니다.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전두환 정권은 이것을 마법의 주문처럼 사용했습니다. 모든 것은 88로 시작해서 88로 끝났으며 사회적 갈등도 88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88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국가적 경사이고 영광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동족의 피를 거름 삼아 집권한 정권의 안정화와 홍보도구로 전락하는 비극을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동안 88담배가 최고급으로 대우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일드 세븐의 담뱃갑 디자인을 모방했지만 탄소 함유 필터를 사용해서 순하고 부드럽다는 칭찬을 애연가들로부터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88올림픽이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듯이 지금은 담뱃값의 맨 아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는 또 다른 코드가 아닐까요?


글 plug10님(프리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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