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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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꼬부기 작성일 10-05-24 16:00 조회 1,49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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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

Nicotine (mg) 0.8 Tar (mg) 10 Country 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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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Guevara de la Serna)’가 본명인 게바라는 1928년 6월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아일랜드계 귀족 후손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군인 출신 집안인 어머니 덕분에 집안 형편은 넉넉했습니다. 어린 시절은 그저 평범한 중산층 자녀처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교 재학 당시 떠난 아르헨티나 횡단과 남미 대륙 여행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게바라는 이때부터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편에 서서 억압과 싸울 것을 결심했습니다.

1953년 7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볼리비아행 기차를 타면서 혁명의 첫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최초의 혁명정부가 들어선 볼리비아 정권에 실망하고 과테말라로 떠났으나, 과테말라 또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붕괴되고 망명자들의 도시 멕시코시티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게바라는 자신이 싸워야 할 적이 제국주의임을 확신하고 혁명을 공부했습니다.

1955년 7월 새로운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 멕시코에 망명 온 ‘피텔 카스트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어울리면서 혁명을 이야기했고 동지가 되었습니다.

1956년 11월 게바라와 카스트로를 포함한 80여 명의 동지들이 그린마호를 타고 쿠바 혁명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상륙지가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에 노출되어 거의 모든 동지들은 죽음을 당하고 게바라와 카스트로를 포함한 10여 명 남짓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들은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으로 숨어들어가 혁명 투쟁을 벌였고 1959년 1월 2일 마침내 꿈에 그리던 쿠바 혁명에 성공했습니다.

게바라는 혁명정부에서 경제 분야를 책임지는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흥장관을 맡았고 쿠바 정부의 전권대사가 되어 사회주의 국가들을 순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이 쿠바혁명을 바라보는 소극적인 태도와 쿠바 봉쇄령을 실시하는 미국의 횡포를 몸소 겪으면서 제국주의의 횡포와 맞서 싸우려면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65년 4월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 한통을 남기고 콩고로 떠났습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싸워야 한다는, 가장 성스러운 의무의 수행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떠난 콩고는 하지만 아직 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1966년 11월 콩고의 실패를 뒤로 하고 새로운 격전지 볼리비아에 도착했지만 볼리비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볼리비아 국민은 혁명군을 냉담하게 바라봤으며 적극적인 협조도 하지 않았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료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고 모든 지원이 끊긴 1967년 10월 8일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과 결전을 벌이다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으며, 다음날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게바라의 나이 만 39세였습니다.

처형당한 이후 종적을 알 수 없었던 게바라의 시신은 1997년 7월 볼리비아의 바예그란데에서 유해발군단의 집념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림으로써 게바라의 혁명 기운을 모두 지워버리려고 했던 자들의 방해를 뚫고 제2의 조국인 쿠바에서 30여 년만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게바라는 사랑을 실천하는 혁명가였습니다.

이데올로기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투쟁한 혁명가였습니다. '금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게바라는 내면적으로 성숙한 인간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을 혁명의 모티브로 삼아 투쟁한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였습니다.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벗어 던지고, 쿠바혁명을 통해 얻은 서열 2위의 막강한 권력도 뿌리치고,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외롭게 투쟁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게바라. 그러나 게바라가 이루고자 했던 혁명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재편하려는 세계화의 음모에 맞서 세계 각국에서 당당하게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중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정의감, 관대함 없이는 진정한 혁명가일 수 없다”는 게바라의 가르침은 영원할 것입니다.

“체(Che)!”

‘Che’는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 정도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인데 게바라가 혁명 투쟁 중 스스로 붙인 호칭으로 제국주의와 싸우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보낸 연대구호였습니다.

<글. 프리존 명예기자 Plug10님.>

댓글목록 1

흡연자유인님의 댓글

흡연자유인 작성일

버스정류장 에서는 흡연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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